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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by LYNN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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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통화로 데워진 스마트폰에 볼이 뜨겁게 통화를 할 때가 있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이상의 시간이 든다. 통화의 주된 내용은 보통 사는 이야기, 일상 생활에 대한 것들이다. 자주 통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친구들의 특징을 뽑아낼 수 있는데 쉽게는 말버릇을 꼽을 수 있고, 깊이 고민해보면 굵직한 주제 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지금 무얼 좋아하고, 어떤 것들로 시간을 보냈는지, 혹은 그들을 고민하게 하는 일들. 친구들이 겪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은 경험하는 대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지 않나.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또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이에게 말을 하는 일 마저도 그들의 경험과 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작가 정혜윤은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있다.(p16)'고 하였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이야기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로 그것, 우리의 미래, 우리의 최종 결론을 암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p16)' 고도 했다. 나와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며 고민한 시간들, 쌓아온 경험들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들이 치열하게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쌓여갈수록 우리들은 더욱 '우리들'로 단단해지고, 고유한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처럼.)

게다가 말과 이야기는 힘이 세다고 생각했다.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던 방에 조그만한 빛을 가져올 수 있는 건 유일하게도 말이었다. 어둠 속의 빛이 되는 이야기들, 어둠에서 나를 밖으로 끌어다줄 수 있는 말들이 있었다. 책에 '아무도 없어도 정직하게 사는 어부'가 한 말이다. '(중략) 나는 살면서 한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결심했어. 나를 낳아준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 그거였어. 내가 나쁜 짓하면 엄마한테 누를 끼치는 거니 나쁜 짓 하지 않겠다, 그거였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면 우리는 다시 만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 엄마 없어도 마음으로 엄마랑 같이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 인생에 딱 그거 한 가지만은 이루고 싶었어. 그 뒤로 후회할 짓은 안하려고 무던히도 많이 노력을 했어.(p34)'



책 속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접하면서 고민했다. 나는 어떠한 말을 간직한 사람이고, 어떠한 말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두리뭉실하고 흐릿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슬픈 세상에서 나에게 기쁨이 되어줄 말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현재보다 나에 대해서 관찰하고 뜯어보고 물어보는 일을 계속해야만 단어, 한 문장이라도 추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내가 지닌, 나만의 이야기와 말이 있을텐데 말이다. 나를 알아가는 일이 어렵다고 여겨져 쉽게 피해왔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지칠 때마다 한 꼭지씩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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