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터질 정도로 밥을 먹으면, 죄책감에 산책을 나오곤 했다. 한강변을 걸을 때마다 마스크를 끼고 내달리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며 ‘어딘가 멋지다.’라는 감상과 거리감, 약간의 경외심을 느꼈다. 달리기 어플을 보니 지난 기록은 2019년 5월이었다. 1년을 넘도록 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몸을 방치하고 놀리기만 하는 증거였다. 몸이 둥글둥글해지고, 무릎에서 뻐걱뻐걱 소리가 나고, 체지방 수치마저 늘어가는 마당이라 덜컥 밖으로 나갔다. 남자친구와 달리기 목표를 정하는데, “한 5km면 되지 않아?” 하고 쉽게 말했다. 거리 감각과 달리기 경험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고, 마음 먹은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신이 나서 앞만 보고 달렸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멈췄고, 삐걱대는 무릎을 만지며 헐떡였다. 뼈소리로는 부족한지 목구멍이 얼얼했고 오열하듯이 폐가 떨렸다. 그래도 질수 없지! 라며 꾸역꾸역 달려서, 3km의 달리기를 마쳤다. 엉망이었던 달리기는 후유증을 남겼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다리가 아프다. 근육을 잘못 놀린 건지 아님 놀란 건지 발꿈치부터 종아리까지 땡땡한 게 지속되고 있다. 아픈 종아리를 얼마나 누른건지 손가락 모양의 멍도 생겼다. (한심한 자여!) 인생에 단거리 경주만 있는게 아닐텐데, 매번 마지막처럼 달렸다. 일만 했다 하면 몸에 병이 났다. 아직도 나를 잘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힘을 다 쓰지 않고 비축하는 요령도 있어야 할텐데!
얼마 전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친구는 장기간 동안 공부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어떻게 2년이 넘도록 공부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하길, “내가 너처럼 공부를 했으면 아마 못했을거야.” 라고 대답했다. 돌아보면 모든 것들에 매달려 갖은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그러니 무엇이든 길게 하는 게 힘들었고, 힘드니 지쳐버릴 때도 있었다. 무엇이든 끝장을 내는 바람에 이는 습관처럼 굳었다. 나도 꾸준히, 그리고 오래 갈 수는 없을까.
멀리 가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한수희 작가는 말한다. 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그녀가 산책하며 떠올린 마음과 생각들이 모여있다. 그녀의 걸음과 걸음 사이에 쌓인 ‘꾸준함’이 돋보인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말의 중심엔 꾸준함이 자리하고 있다. 멀리 가기 위해 힘을 남겨놓듯이, 마음에도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여유라는 건 자신을 잘 알고(자신의 한계까지) 나아가 자신을 믿을 때 나오는 게 아닐까.
나와 같이 온몸으로 일하거나, 일을 하다하다 힘이 빠진 사람들, 지친 상태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한권으로 단단한 마음을 배울 수 있다. 그녀를 따라 야금야금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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