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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책상 잘 쓰는 법, 이고은_ 책상이 기능을 잃어갈 때

by LYNN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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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궁무진한 함수로 이어져 있는 미궁이 아닌가. 우리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인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해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는 행운아일 수도 있고세상에는 돌고래나 대형 수목과, 심지어 좋아하는 책상과 결혼한 사람도 있다. 그런 목재로 만들어진 반려자는 왁스를 먹여주는 일 이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다양한 스킨쉽도 가능하다고 책상과 결혼한 여자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람이란 없는 것이었다.”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p51)

소설의 한 구절에서 사랑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책상을 눈에 띄었다. 책상과 결혼할 만큼은 아닐지라도 책상을 애정하는 마음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으니까.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상은 친구이자 동료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쓰던 캐릭터 책상, 입학하고 부모님께서 사주신 ㄴ자 모양의 일체형 책상, 가끔은 식탁, 어른이 되고선 사무실의 사무용 책상, 연구실에서 사용했던 광활한 책상, 집에서 사용하는 나만의 책상에 이르기까지 책상은 형태와 크기를 달리하며 내곁을 지켜왔다. 슬플 때는 책상에 엎드려서 울기도 하고, 화날 때는 책상을 치기도, 졸릴 때는 자기도 했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빼야할 때는 딛고 올라갔고, 다리가 피곤할 때는 다리를 올리기도 했다. 말하지 않은 쓰임이 많은데, 다 적으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책상을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구매한 책상이 도착하여, 철제 다리와 나무 상판 조립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는데 벅찬 감정에 그만 눈물이 터져나왔다. 애타게 기다리던 책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내 방을 차지하는 가구 중에서 책상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책상이 오기 전에 작은 상에서 책을 보고 공부하던 나에게 큰 책상과 넓은 의자는 변화이자 선물이었다. 새롭게 생긴 책상에서 벌이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하고, 즐거움은 책상과 나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책상이 없을 때면 앉은 자리에서 혹은 선 채로 간이 책상을 만들기도 했다. 받칠 수 있는 넓은 자리만 있다면 무엇이든 책상이 될 수 있었다. 책상의 상판 역할을 할 수 있는 판을 허벅지 위에 올려서 사용하거나, 서랍장의 넓은 부분을, 작은 냉장고의 윗부분을 책상으로 삼아 선 자세로 쓰기도 했다.

요즈음은 하루 중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책상에서 보낸다. 책상을 매일 사용하다 보니 별다른 의식 없이 사용하였다. 자신만만 생활책 시리즈의 ‘책상 잘 쓰는법’ 그림책의 앞머리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책상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지금도 이 책을 읽느라 책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잠깐 책에서 눈을 떼어 보세요. 어떤 방, 어떤 의자, 어떤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나요? 책상 위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 이 구절을 읽고 내 책상을 둘러보니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딱이었다. 책상 위엔 정리되지 않은 책과 문구류들이 넘쳐나 겨우 아이패드 놓을 자리만 남아있었다. 옆에 책장을 훑어보니 토할 듯이 책이 꽂혀있었다. 책상을 좋아하지만 책상을 잘 쓰는 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책의 내용으로 책상 쓰는 법은 물론 책상에서 노는 법, 책 읽는 법, 책장 정리법, 문구 사용법과 정리법이 담겨있다. 지우개로 놀기, 연필로 놀기, 책상에서 몰래 자기와 같은 어린 시절에만 허용될 법한 놀이들이 소개되어 있으나 잘 정리하고 사용하는 방법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한 방법이었다. (나부터 책상을 정리하고 잘 써야겠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주고, 귀여운 그림체를 보는 재미, 더하여 추억으로의 여행까지 가능하다. 꼼꼼한 설명과 동심을 불러오는 내용으로 가득한데 특히 책상에서 책 읽는 방법과 책상에서 몰래 자기가 인상적이었다. 지금 생활에 적용해본다면 사무실에서 몰래 자기가 되려나.(뜬금)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그림책이었다. 책상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알려주었다. 책상을 처음 맞이했던 순간의 기쁨을 되새기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상부터 먼저 정리해야겠다. 아기자기하고, 내용마저 알찬 그림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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