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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영화추천] 어른이 될수록 어려워지는 것. 하마구 류스케 감독. 드라이브마이카

by LYNN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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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쯤 있다. 진실을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렵다면,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음에도 부재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어렵다. 수용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벌이고, 관계 없는 생각들로 머리를 채웠다. 왜 자꾸만 피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너무 아파서)

나를 아프게 하는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나의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그동안 방어적으로 해왔던 행동들을 들춰 속내를 보면 얼마나 아플까. 나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 또한 쉽지가 않다. 아닌 척 하고 싶은 때도 있으니까. 나는 그저 멋진 사람이고 싶고, 쿨해보이고 싶고, 똑똑해보이고 싶은 사람이니까. 자아상을 손상시킬 수 있는 사실/진심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기만 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찌질한 내 모습..)

나이가 들면서 여러 요령이 늘었지만, 요령만으로 통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위에 나열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요즘에는 경험이 쌓여서 받아들이기 전에 어느 정도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모두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벽인걸까. 진심을 마주하기 전에 진정 아플 게 뻔히 보인다면, 직면하지 않고 퇴로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드라이브 마이카'에 주인공 가후쿠는 그동안의 나를 보여주는 거울 같았다.



가후쿠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 연출을 하며 서서히 마음을 돌아본다. 자기 보호를 위하여 숨겨둔 마음을 꺼내기까지, 3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카메라는 가후쿠의 심경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미사키, 연극을 연출하기 위해 모인 배우들, 그리고 오토의 외도남 다카즈키를 만나며 단단히 묶어둔 그의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갈라진 틈새로 진심이 흘러나온다.

그가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는 과정을 보며, 나의 진심을 꺼내어보고 싶었다. 아니, 꺼내어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후쿠가 지닌 아내에 대한 분노와 미안함, 죄책감, 그리움을 한 번에 토해내는 장면에서 나도 많이 흔들리고 울었다. 그를 통해 나를 비추어보며 숨기고 싶었던 나의 속내를 바라봐야하고, 언젠가는 직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숨죽여서 그를 따라가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 많았다. 다시 돌려보고 싶을 만큼 여운이 길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과 대사들이 많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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